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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이상훈 은퇴 후 록밴드 왓..!!..(WHAT!!) 결성

한때 국내 최고의 왼손투수로 군림했던 `야생마` 이상훈(전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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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후 `왓(What)`이라는 록밴드를 결성하고 활동해 왔다. 밴드 ‘What’ 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음악과 한번 들으면 푹 빠지게 되는 시원한 음악을 추구한다.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선글라스를 쓰고, 구불거리는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까만 기타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이상훈(38). 1993년 한국 프로야구 신인 최고 몸값으로 프로가 됐고, 95년 선발로만 20승을 했다. 97년엔 마무리 투수로 당시 최고인 47세이브포인트를 올렸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와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어 '한·미·일 마운드에 모두 오른 선수'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랬던 그가 2004년 6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마운드 대신 무대에서 야구공 대신 기타를 잡았다.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시원하게 공을 뿌리던 그는 추억으로 남았다.

3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 사이 그는 록밴드 '왓!(WHAT!)'의 멤버로 석 장의 음반을 냈고 주말마다 클럽 공연을 한다.

-수천 관중이 바라보는 마운드에서 관객도 별로 없는 무대로 옮겼는데요.

" 똑같아요. 야구도 열 명 놓고 할 때가 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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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을 벗은 지 6개월도 안돼 공연한다는 보도가 났는데.

" 음악 하기 위해 야구를 그만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수박 겉핥기로 보도가 나서 생긴 오해에요. 야구는 이유가 있어 그만뒀고, 음악은 계속 해오던 거였는데 음반 내고 활동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야구 열심히 할 때도 공연은 했어요. "

-야구가 싫어져서 그만뒀다는 건가요.

" 그 얘기를 하려면 긴데…그래서 인터뷰가 싫어요. 사람의 여러 얘기를 짤막하게 한다는 게 어렵잖아요. 기사가 나가면 사람들은 그것만 봐요. "

그러면서도 " 말씀 드릴테니 알아서 쓰세요 " 라며 입을 뗐다. 그가 질문을 던졌다. " 혹시 제 첫 무대를 아세요? "

" 93년에 입단해서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지역에서 파티를 열어줬어요. 장기자랑을 했는데 제가 막내니까 '기타 들고 노래하라'시더군요. 취미니까 늘 기타를 들고다녀 자연스러운 거였어요. 비시즌에 팬들을 위해 공연하면 그 사진이 팬북에도 실렸으니까요. LG에서 그 사진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딴죽 걸어서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

SK와이번즈로의 이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이상훈은 라커룸에서 기타를 치는 문제로 LG의 신임 이순철 감독과 마찰 끝에 SK로 트레이드됐다.  

" 팀이나 언론이 몰아세우는데, 굉장히 많이 참았어요. 인터뷰해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건 그 사람들 얼굴에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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뱉는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팀을 옮기고 나니까 '왜 말 한 번 뱉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막 밀려왔죠. 어느 날 마운드에 섰는데 이런 마음으로 공을 던지면 관중을 속이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이럴 바엔 관둬야겠다'고 결정했어요. SK한테는 미안하죠. "

-번복하고 싶진 않았나요.

" 아뇨.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고, 번복하는 건 더욱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

-다른 팀에서 접촉하거나, 야구 관련한 일 제의가 올 텐데.

" 옛날보다 적어졌지만 해설·코치·인스트럭터를 해보겠느냐는 말들은 있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니까 못하죠. 제가 야구계로 다시 가도 안 돼요. SK는 노력 끝에 저를 받았고 잘 해주기를 바랬을 거예요. 제가 그만둬서 SK도 힘들었을 텐데 몸 만들어서 다른 팀에 간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물론 SK가 임의탈퇴를 풀어줘야 다른 팀이던 어디던 가는 게 가능하지만, 그렇게 된다 한들 어떻게 하겠어요. SK로 돌아간다고 해도 사람들을 우롱하는 거고. 시간 지나면 잊어버린다 해도 (팀이나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

-음악 하는 입장에서 '전직 야구선수' 꼬리표가 싫진 않나요.

" 평생 갈 걸요. 내가 음악적으로 성장해서 인터뷰를 해도 기사는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상훈의 밴드 왓'이라고 나갈 거예요. 대철이형 이 아직도 '신중현씨 아들' 소리 듣는 거랑 마찬가지죠. "

-억대 연봉을 받던 사람인데, 음악으로 얻는 수입이 너무 적지 않나요.

" 그런 얘기 많이 물어보는데,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죠. 차 바뀌고 그러니까 '저 놈, 거지 됐네'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남 의식 안 하니까 상관없어요. "

-음악인으로 목표가 있다면.

" 프로 뮤지션이 되겠다고 작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운동할 때도 '신인왕을 하겠다, 몇 승을 하겠다'고는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야구가 좋아 노력했고 운도 따랐죠. 열심히 하니까 기록도 세웠고, 마이너지만 미국도 다녀오게 된 거에요. 음악도 그래요. 운동하는 사람이 록음악 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신인의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고 알아주는 사람도 많이 생겼어요. 이젠 성장하면 되는데, 그렇다고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메워 공연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

-최고 투수였던 만큼 늘 최고의 목표가 있을 줄 알았는데요.

" 열심히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람을 얻으면 충분해요. '최고의 투수'라는 표현에도 거부감이랄까, 부담감이 있었어요. 인정해주면 좋지만 난 스스로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못 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나는 그냥 잘할 수 있는 걸 했을 뿐이고, 음…너무 부정적인가요? "

그의 전성기, 이상훈이 불펜에서 몸을 풀 때면 잠실구장엔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제곡이 울렸다. 영화 제목처럼 그는 거침없이 도전했다. 그는 이제 야구공 대신 목소리에 열정을 담아 노래한다. 마운드에서 시원한 직구를 뿌리던 모습 그대로. ...홍주희 기자 < hongh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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